[열두띠이야기] 2.동물민속의 상징
같은 동물이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동물을 바라보는 길흉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 예컨대 거미는 보는 시간에 따라 복과 근심으로 이해된다. “아침 거미는 복 거미이고, 저녁 거미는 근심 거미이다.” 아침에 거미를 보면 복이라고 해서 살려 보내지만, 저녁에는 거미를 보는 족족 죽인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칭송되는 사슴(노루)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 해서 꿈에서도 만나기를 꺼린다. 이처럼 동물은 같은 문화권에서도 보는 장소와 시간,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된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은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생활문화나 종교, 관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띠고 있는 동물상징(動物象徵)을 많이 사용했다. 바위그림이나 동굴벽화를 비롯하여 토우와 토기, 고분벽화 등에서 수많은 동물이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 동물상징은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의미와 관념) 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생활상의 일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① 동물의 강한 힘과 거대함은 그 동물이 가하는는 재해나 위험 등에 대하여 공포감과 범상하지 않은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심리적 동기를 ‘무서운 존재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또는 지킴이의 동물신’으로까지 인식하게 한다. 호랑이는 민속신앙에서 대표적인 동물신이다. 호랑이는 실상 인간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힘과 용맹을 지녔다. 그 힘과 용맹성이 호랑이를 두려움과 존경의 이중적인 관념이 복합되어 마침내 신성한 존재로, 신(神)으로써 숭배하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호랑이를 산신이라고 생각하여 호랑이에게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즉, 동예(東濊)에서는 ‘제호이위신(祭虎以爲神)’이라 하였다. 깊은 산에 사는 호랑이에 대한 숭배와 신앙은 비단 동예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반도 전체의 보편적인 신앙이었을 것이다. 호랑이는 큰 산이 있는 곳에서 산악숭배를 구상화하여 받들어지다가, 점차 각 마을의 수호신으로 동제당에 모시는 민중화된 산신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민간신앙의 대상이 된 산신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사찰 내에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 들어서게 되었다. 산신도는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소나무 아래 기암괴석 에 앉은 도인 모습의 산신을 그리는 것인데, 산신 옆에는 반드시 호랑이를 배치하였다. 호랑이는 산신 옆에 사납지 않으면서 위엄이 있고 또 정감 있는 모습으로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② 동물은 재생(再生)과 변형(變形)의 신비로운 능력과 미래를 예견(豫見)하는 능력을 가졌다. 곰과 뱀, 개구리 등은 겨울잠의 죽음에서 새봄의 재생으로 이어진다. 기러기 등의 철새는 한 계절 어디론가(옛날 사람들은 천계, 신선계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동물들의 이러한 능력은 죽음에서 살아나는 재생, 신의(神意)의 전달자 혹은 중계자로서 좀 더 높은 신령(神靈)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곰(단군신화), 뱀, 여우 등 여러 동물들은 변신담(變身譚)에서 보듯이 변신을 하여 사람을 현혹하거나, 인간이 해치면 보복을 하고 은혜를 베풀면 보은한다. 대부분 동물들의 감각은 사람을 초월한다. 사람의 능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래의 일이나 자연현상을 미리 알아서 예조(豫兆)를 보인다. 나라의 흥망, 기후의 변화, 현군과 성현의 생몰, 국가대사의 성패 등을 미리 알려주는 동물 사례는 역사기록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동물들의 이러한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관념은 동물숭배로 나타난다.
③ 공포감을 느끼는 심리적 동기 못지않게 동물에 대한 친밀감이나 식료(食料)제공, 노동력으로서의 효용성 등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바탕으로 해서 동물숭배가 이루질 수도 있다. 소의 경우 우리나라의 농경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되어왔다.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의 역할도 하였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의 역할까지 하였다. 사람들에게 소는 사람 이외에는 가장 친숙한 동물이었다. 소는 우직하고 성실하며 온순하고 끈질기며 힘이 세나 사납지 않고 순종한다. 이러한 소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라고 했다. 농경을 본으로 삼아 온 한민족에게 옛적부터 전해오는 소의 심상(心像)은 우직·희생·성실의 표본이었다. 소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현실적인 이용도가 높은 동물임에도 넉넉하고 군자다운 성품덕에 특별한 상징성과 신성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동물이 제의나 주술에 이용되면 신성성이 부여된다. 소, 돼지, 양이 대표적인 희생물로 각종 제의에 등장한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물(犧牲物)로 바쳐졌다. 『삼국지』와 『삼국유사』에서 돼지를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동물로 신성시하였다. 고구려의 교시(郊豕), 삼월삼일 하늘과 산천의 제사, 12월 납일의 제사, 동제와 각종 국거리, 고사의 제물로 의레 돼지머리를 가장 중요한 '제물'로 모셨다. 돼지는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임과 동시에 국도(國都)를 정해주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전해진다. 즉, 예언자, 길잡이 구실을 하여 성지(聖地)를 점지해주거나, 왕의 후사를 이어줄 왕비를 알려주었고, 왕을 위기에서 모면하게 해주었다.
⑤ 동물의 다산(多産)은 풍요와 풍년을 촉진하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풍요의 신, 재물신 등으로 상징된다. 쥐와 뱀이 이러한 상징으로 민간에서 숭배된다. 쥐는 생물학적으로 번식력이 왕성해 사람들에게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상자일 풍속이나 쥐불놀이, 쥐와 관련된 주문이나 풍속에서 풍작 기원 대상으로, 재물(財物)과 부(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뱀은 알을 낳는 종류와 새끼를 낳는 종류 두가지가 있다. 뱀은 1년에 한 번 알을 낳는데 한 번에 백 여 마리를 부화하는 다산성이 있다.
뱀은 독을 지닌 무서운 존재, 겨울잠에서 다시 깨어나는 재생, 다산성 등의 특징이 있다. 그래서 뱀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무덤의 수호신(守護神), 지신(地神)으로 의미화된다. 또 풍요와 재물을 지키는 업(業)신, 마을의 수호신인 제주도의 당신(堂神) 등으로 받들어진다. 동물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이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숭배하는 관념과 신앙 행위들이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오고 있다. 각 동물들이 민속신앙에서 신격(神格)으로까지 추앙받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바로 그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외형, 행태, 능력 등이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⑥ 동물들은 하늘을 날고, 땅에서 걷고, 물에서 헤엄치는 이른바 각 동물상징의 생태적 다양성과 이중성으로 속계와 영계를 드나드는 영매(靈媒) 또는 신의 사자(使者)로 인식된다. 영혼을 운반할 수 있는 동물은 각 공간을 서로 넘나드는 능력이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새는 땅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뱀과 개구리는 물속과 땅 위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거북이는 바다, 땅, 산 위를 자유롭게 다니고, 게는 바다와 바닷가(육지)에서 동시에 살 수 있다. 사람은 오직 한 공간, 땅에서만 살 수 있는데 이들 동물들은 여러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이 있어 타계(他界)로 가는 부활한 영혼을 실어 나르고 안내하는 동물로 선정된 것이다.
용의 활동 영역은 바다 ↔ 땅 ↔ 하늘 등 신라인들의 세계관 전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용은 바다와 하천 등 물이 있는 곳을 발생지로 삼아 승천하여 하늘에서 활약하는 동물로 상징된다. 일차적으로는 물의 세계를 대표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물에 살지만 비상하는 동물로 변한다. 물에 사는 동물이 육지에 나오는 예는 자라, 거북이, 게 등 몇 종류가 있지만 하늘로 비상하는 용은 신적인 존재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물고기로 변하고, 때로는 인간으로 변하여 인간과 결혼도 한다. 용은 형태를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자유자재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용은 뭇 동물이 가진 최상의 무기를 갖추고 있으며, 구름과 비를 만들고, 땅과 하늘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존재로 믿어져 왔다.
새, 닭, 말은 땅 ↔ 산 ↔ 하늘을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영혼을 천계로 운반하거나 안내할 수 있다. 고대에는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를 영물(靈物)로 보고 천상의 안내자, 하늘의 사자로 여겼다. 『삼국지』에서 「동이전」 변진조에 보면,"‘변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큰 새의 깃털로 꾸미는데, 이는 죽은 이가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고대인들은 하늘이 고향이므로 땅에 내려와 살다가 죽으면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이때 새는 육신과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안내자를 상징한다.
오리는 하늘을 날고 땅을 걸으며 물을 가른다 하여 천지수(天地水) 삼계(三界)를 내왕하는 영물로 우러름을 받아왔다. 천상의 신명과 통신하는 안테나인 솟대 위에 얹는 새가 오리인 것도 그 때문이다. 재앙을 진정시키는 굿판에도 이 오리 솟대가 세워지게 마련인데, 오리가 심한 물결을 가로지르듯 재앙을 무사히 타고 넘길 기원해서이다.
닭이 본격적으로 한국문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 박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 신화에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영이나 김알지 같은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서조(瑞兆)를 미리 보여주는 길조(吉鳥)로 표현되었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 기능도 한다. 장닭이 홰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이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천마총의 달걀 껍질이나 지산동고분의 닭 뼈, 백제 고배 속의 달걀 껍질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일찍부터 중요한 제물이 되었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계란이 수십개 들어 있었고 또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 뼈가 발견되었다. 고분 속에 계란과 닭 뼈가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 식량일 수도 있고, 알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이 재생, 부활의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것으로 말이 나타난다. 신라, 가야에서는 말 그림, 말 모양의 고분 출토 유물이 발견되고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각종 말 그림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자로서 피장자의 영혼이 타고 저 세상으로 가는 동물로 이해된다. 말이 그려진 토기, 토우, 벽화는 표현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장(意匠)과 사상은 다 같다. 즉 피장자의 영혼이 말을 타고 저세상으로 가도록 드리는 공헌적 부장(供獻的 副葬)의 뜻이 있다. 구비 설화나 문헌 설화에서 말은 신성한 동물,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의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또는 신모(神母)이며, 미래를 예언하는 구실을 한다.
특히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말은 모두 신령스러운 동물로 되어 있다. 금와왕, 혁거세, 주몽 등 국조(國祖)가 태어날 때 서상(瑞祥)을 나타낸다든지, 백제가 망할 때 말이 나타나 흉조를 예시해 준다든지 모두 신이 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동물에게 영력(靈力)을 인정하고, 이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비롯해, 인간생활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표현하고 있다. 이들 동물상징의 유물은 고대인의 의식세계를 반영한 것이며 생활상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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