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이원규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이원규(1962~)
경북 문경에서 출생.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 후 백화산 만덕사에 들어 갔다가 10.27 법난 때 하산 당했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거쳐 계명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1984년 휴학하고 광업소에서 막장 광부로 일했다.
그 뒤 서울로 와 월간 [노동해방문학]과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일했으며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기자를 하기도 했다.
1984년 [울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 2004년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지리산의 빈집이나 절방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으며 자신이 머무는 토방을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곳'이라는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 부르며, 한 번 이사할 때마다 시집이나 산문집을 한 권꼴로 냈다.
스스로를 '날라리 시인' '지리산에서 노는 남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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