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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야기

[능소화] -이원규

by hwang706@hanmail.net 2023. 9. 14.

[능소화] -이원규

 

 

 

능소화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이원규(1962~)

경북 문경에서 출생.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 후 백화산 만덕사에 들어 갔다가 10.27 법난 때 하산 당했다.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거쳐 계명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1984년 휴학하고 광업소에서 막장 광부로 일했다.

그 뒤 서울로 와 월간 [노동해방문학]과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일했으며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기자를 하기도 했다.

 

1984년 [울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 2004년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지리산의 빈집이나 절방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으며 자신이 머무는 토방을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곳'이라는 뜻의 피아산방(彼我山房)이라 부르며, 한 번 이사할 때마다 시집이나 산문집을 한 권꼴로 냈다.

스스로를 '날라리 시인' '지리산에서 노는 남자'라고 부른다.